goat's LOG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도서의 자취를 기록합니다.(new!) CENIT by Maria Medem @mariamedemeditor's COMMENT(21.05.30.) 히구치 이치요 선집을 편집할 때, 최정은 디자이너님이, 전혀 일본인은 아닌 것 같은데 일본의 오래된 소설과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다고, 그런데 미래 씨가 팔로우하고 있는 걸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잊고 있던 나의 (SNS) 친구 마리아 메뎀. 그녀는 만화 같은 서사성 짙은, 리소 작업물을 꾸준히 선보이는 스페인 사람이었고... 우리가 표지를 쓰고 싶다는 제안에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메일로 간헐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독립출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는 어느 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그러나 이해할 수도 없는 장편만화를 고용량 PDF로 보내주었죠... 그것이 바로 CENIT이라는 작품입니다. CENIT은 스페인어로, 꼭대기, 정점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해의 위치를 얘기하는 것 같아요.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마다 식사를 함께하는 두 친구. 두 친구는 모두 불면 및 몽유를 앓고 있는데요. 독자의 이해를 조금이나마 도와줄까 싶어 저자에게 '한국어판 출간 기념 서문'을 써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온 아래 글. 독자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네요...『세닛』은 제가 처음으로 긴 호흡으로 만든 장편만화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보자면(첫 번째 작품이라면 으레 걷게 되는 길이겠지만) 사실 의식하지 못한 채로 수년간은 머릿속에서 발전시켜온 이야기 같아요. 진짜로 손에 잡힌 건, 어느 여름밤 해변에서 나눈 친구들과의 대화에서였죠. 이 이야기는 많은 방식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가진 모든 경우의 수를 긍정하고 싶어요. 어떻든 저로서는, 통제를 벗어나는 것, 대화에 참여하는 이들의 서로에 대한 한정된 이해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선형적인 줄거리를 저자의 입으로 들려드리는 건, 독서를 방해할 뿐이겠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독자로서 발견하는 기쁨을 빼앗고 싶지는 않습니다. 쓰고 그리는 동안, 저는 제가 전달하고 싶은 방향을 상실하는 느낌,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데 대한 은근한, 그러나 참을 만한 좌절감을 실시간으로 마주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꿈결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마치 스릴러와 같은 작은 긴장과 지속적인 리듬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쪽프레스와 함께한 한국어 에디션 덕분에 무척 행복합니다.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의 디테일에 익숙해져야 마땅하겠지만,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카디스 해변에서 둥싯 떠오른 이야기가 한국땅에서 읽히게 된다니, 놀라운 마음은 진정하기 어렵네요.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이, 시간과 공간을 특정하지 않은 이야기 속의 식사와 꿈들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2021년 여름, 마리아 메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