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스파인서울에서 진행된 워크숍 「몸 만들기」 2기의 결과물을 일부 소개합니다. 「몸 만들기」는 자신의 몸, 혹은 책이라는 몸을 주제로 글쓰기, 편집, 디자인, 제작을 포괄하여 다루는 워크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그 스플릿」 ⓒ 신민경, 2025 의미화로부터 지친 당근 ‘당그’가 휴식하는 법을 다룬 인터랙티브북이다. 이 책은 낱말에 있어 의미란 몸의 무엇에 해당할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의미가 놓이는 위치를 살짝 뒤바꾸면 투명한 잔털을 살살 빗어볼 수 있지 않을까? 의미를 헤아린다는 건 어찌 보면 솜을 트는 일과 같다. 흔히들 의미가 담겨야 말이라 하지만 그 틀은 우리들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 ‘당그’의 경우처럼. 명확히 발화되지 않아도 자리에 머무는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당시의 숨, 향, 나름의 감촉. 언어화되지 않는 한 계속 보송할 기운들을 성글게 엮어 어엿한 말로 ‘당그’를 세웠다. 결과물에 직접적으로 실리지는 않았으나 ‘당그’를 새로 정의해보는 과정에서 맛본 달콤한 초콜릿, 따뜻한 차, 온화하게 나풀거린 해바라기 조명 특유의 빛 등이 모두 의미들로 남았다. 작업자 신민경. ‘몸 만들기’라는 문구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워크숍에 참여한 비출판인. 책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하나의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테두리에서 책이라 불릴 수 있는 것들의 범주를 헤아려보려 했다. 평소 중심에 바로 향하지 않고 우회하는 글쓰기를 즐긴다. 요새는 의미를 둘러싼 보풀들을 뭉쳐 이야기를 만들고 가벼이 헝크는 데 관심이 많다, 새로운 형상이 몸으로 출현할 때까지. 종종 그림책의 세계에서 근심 없는 채소로 지낸다. 「사랑의 흔적」 ⓒ 김지윤, 2025 오랫동안 간직해온 애착인형 ‘하마’를 위해 제작한 책이다. 많은 시간과 세월이 압축된 존재인 하마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시각화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보존하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은 늘 존재했었다. 그래서 이번 워크숍을 계기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흔적을 작지만 따뜻한 형태로 전하는 책으로 만들었다. 워크숍 초반, 책의 형태와 구성에 대해 여러 고민이 있었다. 어떤 방식을 통해 읽는 이들을 사랑에 참여시킬지, 어떻게 감정의 흐름을 책넘김의 경험으로 연결할지를 고심하면서 여러 번의 스케치와 구조 재설계 끝에, 보는 사람이 책을 펼치고 넘기는 과정에서 만든 이의 애정이 전해지도록(즉 물리적 참여를 통해 감정을 공유하도록) ‘여러 방면으로 펼치며 읽는’ 형태를 고르고 발전시키게 되었다. 사랑의 면면을 바라보고자 애쓰는 독서경험 역시 사랑의 일면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업자 김지윤. 말보다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감정과 기억이 이미지로 떠오른 뒤에야 비로소 텍스트로 연결할 수 있었다. 다시 그것이 이미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작업을 완성했다. 손끝에서 시작된 이미지가 텍스트로 이어지고, 다시 새로운 이미지로 변환되며 나의 신체와 감정이 작업 속으로 흐르는 경험을 기반으로 책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워크숍은 단순한 제작의 무대가 아니라 사랑의 흔적을 기록하고 감정을 나누는 공동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감정을 교감하는 매개체로 책(몸)을 설계하고, 페이지(몸)를 넘기는 행위가 참여자의 신체와 감정의 교차를 유도하도록 구성했다. 신체에 기반한 표현방식과 워크숍이라는 시간 기반 공동체 기반의 맥락이 만나는 가운데, 나의 방식으로 사랑을 기록하는 유의미한 경험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