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키미 장 미셸 마송(Jean-Michel Masson), 일명 닐소(Nylso)는 프랑스의 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1964년생인 그는 독학으로 만화를 공부한 후 만 30살이었던 1994년에 독립만화잡지인 《르 시모(Le Simo)》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의식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1994년은 프랑스 독립만화계에 있어 아주 중요한 해였어요. 왜냐하면 80년대에 프랑스 만화계가 질적/상업적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대안적 시도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속에서 당시 프랑스의 전위적이고 재능 있는 청년 만화가들이 만든 출판사 아쏘시아시옹(L'Association)이 1994년에 대안만화 붐을 일으켰었거든요. 아마도 여러분도 이름 정도는 아실 다비드 베의 『발작』이나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가 바로 이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이렇듯 괜찮은 타이밍에 만화를 시작한 닐소는 소규모 서점들과 북페어를 거점으로 《르 시모》를 독립 배포하면서 알음알음 인지도를 높여갔어요. 칸, 펜선, 데포르메 등의 만화적 관습을 독특하게 뒤트는 그의 만화를 한 번만 보고 지나치기는 좀 어려웠겠죠. 그러다 2000년부터 (나중에 플르블르브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게 되는) 고민 많은 어린 서점주의 방랑을 통해 만화적 상호텍스트성을 실험한 ‘제롬(Jerome)’ 연작을 발표하며 독자와 비평가들에게 인기를 얻었죠(참고로 이 작품의 단행본은 지난 2022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유산(Heritage)'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단편, 일러스트 전시, 그림책 등을 종횡무진으로 발표하며 닐소는 지금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해왔습니다. 그리고 2018년, 닐소는 어느 늙은 개의 정처 없는 방랑을 따라가는 한 권의 만화 『키미 – 늙은 개 이야기』(이하 『키미』)를 발표하죠.여러분도 몇 장 뒤적거리면서 금방 느끼셨겠지만, 『키미』에서 닐소는 특유의 펜선을 통해 ('특징을 그리면 그 존재를 지시하게 된다'라는) 만화적 데포르메의 가능성을 흥미롭게 탐구해봅니다. 종종 55쪽이나 74쪽의 경우처럼 원근법이나 시간 구분이 뭉개지기도 하고, 키미가 어딨는지 금방 찾을 수 있는 때도 있지만 키미를 애써서 찾아야 할 때도 종종 있죠? (그런데 우리는 왜 계속 키미를 찾을까요? 어떤 조건과 관습이 ‘키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었을까요?) 이는 거칠고 두드러지게 작품 속 모든 이미지를 구성하는 펜선과, 키미 대신 그가 놓인 공간의 사물들을 더 힘주어 그리고 더 눈에 띄게 배치하는 닐소의 전략 때문일 겁니다. 그럼 그는 왜 이렇게 만화를 그렸을까요? 키미가 그림자나 풀숲과 거의 구분되지 않게 그려진 28쪽을 보면 감이 잡힐 것 같습니다. 키미라는 '형상'과 공간이라는 '배경'의 구분이 희미해지거나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을 닐소는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여기서 거칠고 두드러지는 검은 펜선들은 숲과 해저의 윤곽이 되고, 그림자가 되고, 디테일한 형상이 됩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을 닐소는 여기서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는 거예요. 19쪽에서 키미는 "난 단순한 존재야. 단지 몇 개의 선으로 이루어진."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문장은 『키미』의 모든 그림에 해당되는 진술이 아니던가요? 즉 숲을 이루는 선과 캐릭터를 이루는 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책 속의 모든 페이지를 이루고 또 메우는 동일한 형식의 펜선이 일관되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키미』는 문자 그대로 ‘선으로 이루어진 숲’이자 ‘숲으로 이루어진 선’의 묶음이 됩니다. (키미가 바다 속을 유영하는 것도 아주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데, 어쩌면 이건 키미를 포함한 이 세계가 모두 같은 펜선으로 그려져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달리 말해봅시다. 숲이나 해저라는 배경이 키미를 포함한 형상들에 선행하거나, 키미라는 캐릭터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준비된 게 아니라, 형상과 배경이 서로 구분 불가능한 방식으로 출현했다 분산했다 소멸했다 하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반복하건대, 순전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게 아니라 "출현했다 분산했다 소멸했다" 한다는 게 중요한 지점입니다. 예컨대 나비효과처럼 세계와 우리가 늘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닐소에겐 적절치 못한 것으로 느껴질 것 같아요. (자기는 자연과 하나라고 했다가 나중엔 자연이 자길 안 받아준다고 하는 등) 자꾸 상충되는 말을 내뱉는 키미가 대변하듯, 그보다는 세계와 우리가 적당히 연결되었다가 분리되었다가 하기를 변덕스레 반복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겠죠. 철학자 애나 칭이 (얼마 전 국역되기도 한) 『세계 끝의 버섯』에서 ‘송이버섯은 (다른 버섯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으로 엄격히 구분되는 걸 거부하고 끊임없이 교란을 야기한다’라고 말했던 것을, 닐소는 키미와 그가 속하고 이루는 세계를 통해 보여줍니다. 『키미』에서 일어나는 건 바로 이런 반복 운동으로서 존재-하기(be-ing)인 거에요. 존재론적 콩트로서 『키미』는 이 존재-하기가 만화화될 수 있는 한 근사한 방법을 (키미의 태도와는 별개로) 참으로 천진하게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