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조명

치명적인 조명어떤 분들께는 《뉴요커》의 이 표지, 코로나-19와 함께 미국 내에서 들끓은 동아시아 혐오의 정세를 강렬하게 압축한 표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할 R. 키쿠오 존슨(R. Kikuo Johnson)은, 1981년생으로 하와이의 마우이 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아시아계 미국인인 그는 뉴 잉글랜드의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이란 미술학교에서 (『배트맨: 이어 원』의 그림작가이자 『아스테리오스 폴립』의 저자로 유명한 데이빗 마추켈리 밑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했고, 2002년부터 약 3년간 그려진 것들 그리고 그려질 것들과 씨름하며 그래픽노블 『나이트 피셔』(2005)를 만들었죠. 연재 없이 바로 전설적인 그래픽노블 전문 출판사 판타그래픽스(Fantagraphics)를 통해 발표된 이 데뷔작은, 당시 미국 만화계에서 자전서사 유행이 크게 불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퍽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2012년에는 하와이의 설화를 바탕으로 아동만화 『상어 왕(The Shark King)』을, 2021년에는 애도에 관한 단순하고 함축적인 『아무도(No One Else)』을 출간했고, 특히 후자는 당시 여러 매체에서 높은 인기를 얻기도 했죠. 현재는 뉴욕에 살면서 잡지와 책의 표지를 디자인하거나, 종종 단편만화를 발표하고 있습니다.『나이트 피셔』를 논하기 전에, 먼저 만화에서 어떤 캐릭터의 얼굴에 먹칠이 된 경우를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얼굴 한 면을 새까맣게 만들거나, 이목구비를 아예 어둠 속으로 지워버리는 경우 말이예요. 그건 만화 내적 세계 안에선 그림자일 수도 있고, 형식상으로 보면 감정 표현의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먹칠이 쓰일 때 우리는 흔히 저 캐릭터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거나, 안 좋은 이야기가 떠올랐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불안한 상태일 거라고 짐작하게 됩니다. 이건 '얼굴이 곧 영혼'이라는 서구-기독교적 사유가 보편화된 결과일 수도 있고, 만화가들 각자의 표현 의지가 세월이 지나면서 모종의 문법으로 수렴된 결과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나이트 피셔』는 좀 이상합니다. 주인공인 로렌의 (맨얼굴이 아닌) 안경 속 맨눈을 우리가 거의 보지 못한다는 건 넘어가더라도, 일상의 장면에서도 종종 먹칠이 된 얼굴이 등장하곤 하거든요. 초반부만 봐도 그렇죠? 12~13쪽에 로렌이 정원을 걷는 장면,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대화할 때 아버지의 얼굴 묘사를 봅시다. 물론 이건 따가운 햇빛 때문이라고 넘어갈 수 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56~58쪽을 보면, 존의 손전등의 위치가 바뀌는데도 그 위치에 따른 광량의 변화를 존슨은 사실상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만화들은 암흑 속에서 캐릭터의 형상을 뚜렷이 보여주더라도 손전등 같은 광원이 등장하면 광량의 변화 정도는 잠깐이라도 묘사하는데 말이예요. 또 61~65쪽은 새하얗게 칠한 차창 밖이 너무 잘 보이도록 구도가 짜여서, 만화 속 시간이 밤이라는 걸 몰라도 로렌과 셰인의 대화가 성립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죠. 이런 차원에서라면 『나이트 피셔』는 학교나 학원에서 상당히 많은 지적을 당할 작품입니다. 만화 연출에 기본이 안 되어있다며 말이죠. 당시 존슨이 만화가로서 아직은 초보였기 때문에 이리 그린 걸까요?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넘어가지 않고 굳이, 이 먹칠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보고자 합니다.만화의 이미지가 흑백인 게 상대적으로 평범한 일이었던 20세기 중후반을 돌아보면, 만화로 어둠을 연출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고 이상한 일이란 걸 알게 됩니다. 만화 '속에서' 어둠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만화라는 매체가 어둠에 걸맞은 형식을 갖추는 게 적어도 만화의 수단들 자체로는 어렵다는 거예요. 가령 캐릭터들이 암흑 속에 갇힌 상황을 웃기게 연출하려는 클리셰적 연출을 떠올려봅시다. 새까만 칸이 연달아 이어지는 와중에 각 캐릭터들의 눈은 우리에게 보이고, 말풍선이 그 눈 위에 그려지죠. 이건 어둠 속에서도 독자의 흥미를 유지하기 위해 인지되어야 할 최소 요소들을 가져가는 연출입니다. 한편 캐릭터의 신체는 보이지만 그를 둘러싼 배경은 전부 새까만 장면을 떠올려봅시다. (『나이트 피셔』에선 83~84쪽을 봐주세요) 이건 한계에 처한 캐릭터의 주관에 집중하면서 독자를 그 주관에 이입시키려는 연출이죠. 하지만 둘 다 필요에 따라 만화적 허용으로 어둠을 적당히 묘사한 거지 제대로 된 어둠을 연출한 건 아니란 말이죠? 좀 거칠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새하얀 칸이 흔히 아무것도 없는 공허나 잠재를 지시한다면, 새까만 칸은 흔히 '무언가'가 있긴 하지만 캐릭터나 독자는 알 수 없는 미지나 한계를 지시합니다. 그리고 후자의 이런 지시성이 보통 어둠의 특성이기도 하죠. 하지만 현실의 촬영 도구로는 불가능한 이미지와 그것의 연쇄를 제시하길 요구받는 만화는 이런 어둠의 묘사를 (일반 독자가 어둠이 지속되는 장면을 충분히 인내하지 못하리란 걸 넘어서) 칸의 연쇄 속에서 잘 이어가기 어려운 매체입니다. 앞서 예시로 든 연출 방식들은 바로 이런 한계를 적절히 우회하려는 방책이죠. 저는 여기서 『나이트 피셔』가 ‘하와이 청소년들이 밤과 낮을 거꾸로 사는 이야기의 만화’라고 축약해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봅니다. 어둠이 내린 밤에 진짜로 살아있는 것처럼 막무가내로 구는 이들 말이예요.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만화 속에서 밤은 대개 (어른의 논리와 통제를 벗어난) 어린이나 청소년의 시간이지 않습니까?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여기서 존슨은 어둠에 있어 만화가 지닌 이런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했고, 이를 우회하지 않고 외려 자기 이야기에 걸맞은 형식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험적으로 시도했다고 말이죠. 완전한 어둠에 대한 만화의 곤란을, (‘현실적으로’ 가정된) 어둠의 시간 속에서 자기 형상과 세계를 느끼는 청소년의 현실감각과 교착시키는 겁니다. 뒤죽박죽인 먹칠을 포함한 조명 연출을 이런 차원에서 옹호할 수 있을 테죠. 하지만 동시에 존슨은 이런 현실감각이 가시적인 어둠, 먹칠의 묘사를 없애는 게 아니라 겨우 곳곳으로 밀어낼 뿐이란 것도 잘 보여줍니다. 후반부의 사건 이후 로렌이 거니는 공간들에 드리운 어둠과 일부 선명한 사물들을 보시죠. 여기서 뚜렷한 사실이 수면 위에 올라옵니다. 이런 불안하고 불균형한 공존이 청소년기의 숙명이자 또한 만화의 숙명이라는 것 말입니다.그렇다면 『나이트 피셔』는 실패작이라서 더 흥미로운 이상한 작품이 됩니다. 적당히 안전하고 판에 박힌 성공이 아니라, 만화의 한계를 치명적으로 찌르고 그걸 독자에게 전경화(前景化)하는 크리티컬한 실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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