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Post StandardsInterviewee 김민수(포스트스탠다즈 대표) @poststandsIntervierwer 김미래 @miraeseoul¶ 포스트스탠다즈의 기원 포스트스탠다즈라는 이름에는 ‘디자인에 있어 새로운 기준을 만들자’라는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그간 일하면서, 참고자료를 앞세워 흉내 내기를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나 기획자를 많이 만났거든요. 타인이 해놓은 걸 베끼고 참고하는 작업이 당연시된다는 건 제게 큰 스트레스였어요. 물론 리서치하지 않으려고 해도 불가항력적으로 자연적으로 리서치하게 되는 세상입니다. 잠깐 짬이 나서 열어본 인스타그램만 해도 각종 이미지와 사례를 폭포처럼 쏟아내니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죠. 그치만 어느 하루, 다짐을 했어요. ‘절대로 핀터레스트를 열지 않겠다’ ‘절대로 인스타그램의 책갈피기능을 사용하지 않겠다’라고요. 매번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접근법 등을 고안하려면 바닥부터 차근차근 디자인의 당위성을 찾아 쌓아가야 하는데, 타인이 만든 기준을 따라가면 표현에 한계를 만나기 쉽다고 판단한 거죠. 거기다 덤으로 자존심도 상하고, 이런 식의 일로 ‘디자인페이’나 ‘설계비’를 받는 게 타당한가 의구심도 듭니다. 다소 돌아가는 길이지만, 잠자는 시간과 쉬는 시간, 노는 시간을 약간은 줄일지언정 지금처럼 디자인을 대하려고 해요. 포스트스탠다즈라는 이름은 역시 의지를 담은 이름입니다. 레퍼런스를 참조하지 않고 0에서 출발하겠다는 의지, 여기에 저의 취향이 가미되면 한층 새로운 기준들(post standards)이 세워지지 않을까요. ¶ 스튜디오를 을지로로 정한 까닭 을지로는 지리적으로 이점도 많고 월세가 저렴한 지역입니다. 개인적으로 강남보다 종로, 을지로의 도시 이미지를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가장 사무실을 얻고 싶은 장소이기도 했어요. 서울 시내 대부분의 현장이나 미팅 장소까지 30~4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위치로서 업무생산성을 담보해주기도 하고요. 불행 중 다행일는지 코로나로 인해 계약된 일들이 줄줄이 취소되는 울적한 상황에서 사무실 후보지는 점점 늘더군요. 건물주들도 공실이 많아지니 부담이 되었는지 월세를 낮추기 시작했기에, 기대보다 좋은 조건으로 을지로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흔히 힙지로라 알려진 공간은 제가 좋아하는 곳들은 아니에요. 저에게 을지로는 ‘힙’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는 인상이라, 즐거움에 약간의 피로와 우울이 동반되는 곳이거든요. 제 사무실 주소에는 을지로가 들어가지만 실제 위치는 명동에 가까운데, 명동 끝자락에 위치한 덕에 점심 식사를 하러 갈 때도 보통 명동성당이나 롯데백화점 쪽으로 걸어가게 됩니다. 명동을 걷자면 항상 묘한 설렘을 느끼게 됩니다. 아직 명동의 음악사가 남아 있던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왔던 성탄절 명동의 이미지는 여전히 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북적이는 인파에서 묘한 에너지를 받고 유난히 반짝이던 명동의 성탄절 길거리를 눈에 담던 시절이 문득문득 생각나서 출근할 때 기분이 좋아져요. 이 부근의 즐겨찾는 공간으로는, 기업은행(장교빌딩) 지하에 있는 샹제리제(샹젤리제 아님) 지하상가를 꼽고 싶어요.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대형 빌딩이나 대형 도심 속 지하 아케이드, 리뉴얼 전 매력덩어리였던 코엑스에는 어쩐지 향수와 설렘이 있잖아요? 샹제리제 지하상가에 가면 꼭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이제 그때의 아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문구점, 당구장, 백반집,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인쇄소가 즐비한 공간입니다. ¶ 혼자 할 수 없는 일, 타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하는 즐거움 그래픽디자이너와 협업할 때 영감을 받거나 사고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픽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그래픽을 평면적이고 단편적인 분야로 인식하게 하는데,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한 영감을, 협업하게 되는 그래픽디자이너에게서 받을 때가 굉장히 많거든요. 실제 함께했던 뛰어난 그래픽디자이너분들은 완벽한 하이어라키를 설계해주는 일이 많았고, 그들이 마련한 자료들 덕분에 공간의 평면에서부터 가구의 구조, 개수까지 어려움 없이 정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설령 그 계층구조가 완벽히 글로 정리된 문서가 아닐지언정 약간의 설명과 시안으로도 완벽히 전달받곤 하는데, 그걸 읽어내는 게 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면 언제나 설레고 재밌어요. ¶ 변수에 대응하는 방식 비단 인테리어나 건축뿐이 아닌 모든 디자인은,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변수를 늘 만납니다. 대개 변수는 클라이언트의 사고방식, 주어진 예산, 스케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자세 등 많은 요인으로부터 발생하고, 이를 만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피하고 싶은 대상입니다. 갑의 위치에서 현장을 뒤흔드는 클라이언트, 턱없이 부족한 예산, 무리한 스케줄, 시공일정을 맞추지 못하게 된 협업처, 믿었던 사람의 돌변 등등… 심할 때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쉬어지지 않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참고 다짐하기를 수차례…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항상 어려워요. 결국 제 스스로 단단해지는 길밖에 없겠죠. 가로막힌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일을 올바른 방향으로 조정하기 위해 친절하지만 날카롭게 상황을 정리하려 합니다. 그 정리하는 능력을 기르려고, 지금도 시공하시는 분들과 함께 섞여 함께 공구를 들고 시공해요. 혹여나 처음 뵙게 되는 분들에게 인격적인 관계에 있음을 이해시키고 이해받고자 심부름을 대신 다녀오거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드리기도 하죠. 그럼에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그간 신뢰로 가족같이 지내는 여러 시공팀들이나 소장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한층 단단한 유대감을 형성하려고요. 그래도 안 될 때는… 최선을 다해 싸워야죠! ¶ 텅 빈 공간을 마주하면새로운 공간과 디자인에 대한 갈증은 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규모와 상관없이 새로 일을 시작하는 건 언제나 설레요. 다만 인테리어나 건축은 주어진 견적에 맞추어 디자인이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근사한 디자인을 뽑아내더라도 예산이 부족하면 의미가 없거든요. 그래서 일을 착수하기 전에, 제일 먼저 묻게 되는 건 클라이언트의 ‘가용예산’이에요. 그 예산에 따라 디자인을 위한 평면도 설계의 방향이 정해지거든요. 가용예산에 따라서 어림짐작으로 가능할 것 같은 구조를 고민하며 평면도를 우선적으로 설계합니다. 면적에 따라 알맞은 동선의 최소 폭을 정하고 클라이언트가 반드시 구현하고 싶어 하는 형태와 기능을 전달받아 조합해요. 그렇게 하나의 장소에 구현 가능한 평면은 전부 설계해봅니다. 평면도를 설계하면서, 이 평면이 실제 입체화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동시에 상상하고 고민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굉장히 타당하고 합리적이며 심미적인 평면도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를 토대로 공간을 입체화하여 본격적인 디자인을 만듭니다. 디자인의 디테일은 평면에 이미 자리 잡혀 있어야 해요. 평면에서 디자인의 의도가 느껴져야만이 소위 말하는 디테일의 당위성이 증명되니 말이죠. ¶ 유용성과 심미성이 충돌할 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심미성이 유용성보다 우선시되면 안 된다고 믿습니다. 심미성이 0순위가 되는 소위 ‘아트퍼니처’가 요즘 대유행하는 것은 현실이지만요. 그래서 제가 디자인하는 모든 가구에는 나름 여러 작업을 통해 연구하여 찾아낸 편안한 착석감 같은 것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미 평면도를 설계할 때부터 무작정 심미성을 좇기보다는 유용성을 염두에 둡니다. 개인적으로 빅터 파파넥의 디자인 이론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의 디자인 결과물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이론에만큼은 무척 공감합니다. 디자인은 사람에게 이로워야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물론 그 이로움은 사용하는 이에게 이롭다는 뜻이므로, 사용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저 아름다워서 만족할 수도, 너무나 편리해서 만족할 수도 있겠죠. 저는 그럼에도 유용한 디자인이 우선되길 바라요, 그 유용함을 우선적으로 좇다 보면 디자인도 발맞추어 좋아지거든요. ¶ 선호하는 디자인 소재 특별히 선호하는 소재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디자이너 정체성을 지닌 만큼 새로운 소재를 쓰고 싶다는 욕망은 항상 있지만, 예산, 취급의 어려움, 소재의 신뢰성 등 이유로 자주 찾아지는 소재가 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합니다. 예를 들어 목재는 모든 인테리어의 기본이 되고, 철재 역시 인테리어에서 가장 단단한 소재이기 때문에 즐겨 사용합니다. 흔히 레자라고 부르는 인조가죽은 생각보다 취향을 많이 타는 소재이기도 하고, 실제 사용되는 바를 관찰할 샘플이 한정적이라서 모든 집기에 통일되게 사용해도 무난할 만한 원단을 찾아 쓰는 식이죠. 타이벡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강도나 특성이 다양해서 용도에 맞는 것을 찾아 쓰기 시작했습니다. 빳빳한 종이 같던 처음의 질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드러운 가죽 같아지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 포스트호텔(Post Hotel)이 꾸는 꿈 디자인할 때마다 제품 양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가구 브랜드를 꾸리고 싶다는 꿈은 항상 있어요. 그래서 그 욕구를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포스트호텔’이라는 개인전을 매년 진행합니다. 포스트호텔을 열기 위해 시기마다 자주 사용했던 조형들을 정리해 가구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철제가구 브랜드 레어로우와의 협업도 ‘포스트호텔 2018’로 시작하게 되었죠. 제가 디자인에 관여해 만들어진 가구를 볼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계약조건보다는 협업을 성사시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어요. 그래서 레어로우에서 허락하는 선에서는 포스트호텔 2018에서 더 발전시킨 디자인 결과물을 다수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 개선된 모델의 제품화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제품화와 판매의 진행과정을 하나하나 살피는 기회였습니다. 현시점에서 제품을 만들어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은 섣부르다고 판단됩니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는 수많은 고객응대와 꾸준한 품질관리가 받쳐져야 하는데 관련된 자본이나 인력이 저에겐 아직 부족해요. 무엇보다 제품화하기 전까지는 수차례의 샘플테스트가 요구됩니다. 종종 새로운 가구를 디자인해서 납품한 다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발견될 때가 있어요. 튼튼해 보이던 부분이 흔들리거나 사용하면서 생기는 변형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샘플테스트를 거치지 못해서입니다. 제품은 하루이틀 만에 이뤄낼 수 있는 꿈은 아니지만, 언젠간 꼭 할 일인 만큼 철저히 대비하려고 합니다. ¶ 출판사(쪽프레스)의 스튜디오이자 숍을 디자인하며 스파인서울의 매력은 단연 복도처럼 길게 뻗은 공간과 양옆에 크게 나 있는 창입니다. 처음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 현장을 방문했을때 이 창문을 막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면을 설계할 때도 이 창문을 그대로 두면서 올바른 동선, 넉넉한 수납과 진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정말 여러 가지 시안을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창문을 가리지 않고 쪽프레스에서 출간한 많은 책들과 소품들을 진열하려면 지금 디자인처럼 창문과 수직이 되도록 책장을 배치해야만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왕이면 그 책장이 움직인다면 더 좋겠다 싶었죠. 전시나 팝업, 워크숍 같은 다양한 이벤트를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공간연출을 달리해야 하는데 대다수의 집기들이 가변적으로 변경된다면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장은 레일에 의지해 좌우로 움직이게 하고 책상에는 앞면과 뒷면의 용도를 달리해 앉거나 진열장으로 쓰는 식으로 범용성을 주었습니다. 책상에 딱 맞게 하우징되듯 수납되는 의자마저도 용도에 따라 책꽂이가 되도록 의자의 뒷면에 틈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꽂이가 되는 판은 의자로 활용할 때는 등받이 역할을 겸하죠. 범용성과 실용성의 공간으로서 스파인서울을 감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작업에 있어서든 추억에 있어서든 중심에 놓인 책이 있다면 쑥쓰럽지만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은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전략삼국지』 60권입니다. 워낙 대중적인 고전소설 삼국지연의를 만화화한 작품으로, 적절한 인물 표현 때문에 유년 시절 굉장히 재밌게 봤던 만화예요. 웃긴 건 부모님이 『슬램덩크』, 『드래곤볼』부터 해서 그간 제가 모아두었던 걸작 만화책은 공부를 이유로 다 버리시면서도 삼국지 60권은 값이 나가기도 했고 나름 교육적인 콘텐츠로 느끼셨는지 절대 버리지 않으시더군요. 부모님 앞에서 당당히 볼 수 있었던 유일한 만화책이 『전략삼국지』였어요. 이 작품의 미덕 하나는 조조에 대한 요코하마 미츠테루의 해석에 있어요. 삼국지의 스토리마저도 주입식 교육을 받던 세대라 당연히 유비는 착하고 조조는 나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조조를 굉장히 매력적인 간웅으로 묘사해, 되려 유비가 기회주의자로 비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조조를 좋아한다고 하거나 유비를 비판하면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에게 무시당하던 분위기도 기억납니다. 어쩌면 그런 반골기질도 지금의 저를 잘 설명해주는 듯해요. 여전히 본가에 방문하면 방 한 벽에 전략삼국지가 1권부터 순서대로 꼽혀 있어요. 좋아하는 장면이 집중적으로 포진된 24~26권은 책의 제본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 유명한 적벽대전을 다루는 부분인데, 어찌나 재밌던지 화장실에 한참 앉아 있다 나오곤 했어요. 마지막 60권도 참 여러 번 봤는데, 마지막 페이지의 장면이 너무나 쓸쓸했어요. 만화에서 서늘한 공기마저 느꼈는데 이 쓸쓸한 묘사는 만화사에 필히 언급되어야 합니다! ¶ 잠재적 의뢰인께 저를 찾아주시고 의뢰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일의 규모와 상관없이 견적이 적건 크건 저를 알아봐주시고 저를 믿고 맡겨주시는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태도에서 싹튼 거리감이 계속되거나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할 때는 거절하는 일도 더러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시기에 앞서 드릴 당부라면, 스케줄은 최대한 길게, 대화는 많이, 갑과 을이 아닌 협업의 관계를, 레퍼런스 자료대로 만들어달라는 요청만은 자제해주실 것. 이 작은 규칙만으로도,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자부합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해주세요,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