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WooyaInterviewee 우야(만화가) @wooya_91Intervierwer 김미래 @miraeseoul¶ ‘우야’라는 이름으로 우야(雨夜)로의 활동은 2016년도부터였으니 어느덧 6년이 돼가네요. 본명이 이상우예요, 어릴 적에 외할머니께서 “상우야” 하는 대신에 짧게 “우야”라고 부르신 기억에서 따왔답니다. 저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할머니가 제 그림을 참 좋아해주셨어요. 스무 살 되던 해, 저는 서울로 올라와 좋아하던 만화 공부를 하고 어느 정도 자릴 잡고 외할머니를 뵈러 가려고 했지만… 서울에서 지낸다는 게 쉽지 않았고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정작 좋아했던 창작은 하기 싫은 일이 되기도 했어요. 그렇게 몇 해를 흘려보내고, 외할머니의 부고에 충격을 받았죠. 그때는 그 모든 게 주제에 맞지 않는 창작이란 걸 시작한 탓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활동을 접고 노동판으로 들어가 하루살이처럼 지내다가 예전에 함께 공부했던 동료작가 아거와 대화를 나눈 이후로 다시 펜을 잡게 됐을 때는 잊었던 행복을 꼭 되찾은 것만 같았습니다.(정작 아거는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지만요…) 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창작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시기 막 페이스북이 부상하던 때라, ‘세모’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개설해서 예전처럼 작업하기로 했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뾰족한 삼각형을 갖고 있는데, 양심에 찔리는 건 그 삼각형이 돌아가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찌르는 일이 반복되면 모서리가 마모되면서 점점 동그래지고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린다… 라는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라 세모라는 이름을 썼죠. 기대보다 페이지가 인기를 얻으면서 빠른 시간에 큰 관심을 받게 되었어요. 감사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제 능력 밖의 수확이라는 생각에, 세모를 남겨두고 새로운 이름으로 시작하고 싶어졌고, 그게 ‘우야’였어요. 이 이름을 쓰면서, 서른이 되기 전까지 이제 외주를 받지 말고, 돈은 파트타임으로 벌고, 남는 순도 높은 시간에 집중해서 창작하자는 다짐을 했는데,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참, 어떤 분께서 우야라는 이름을 ‘비가 내리는 밤’으로 해석해준 일이 있어요. 그 해석이 고마워서, 한자 雨夜를 같이 쓰고 있어요. ¶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 이 질문을 받고 오랜 시간 고민했는데요. ‘절망’인 것 같아요. 다소 설명이 필요할 텐데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되네요. 그러니까 누구나 절망감을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겪죠. 하지만 여러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우울한 상황을 마주할 때 막상 대응하는 법을 몰라 상황은 더 힘들어질 뿐이죠. 평소에 절망이란 것을 너무나 외면해 버릇해서,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을 정답인 듯 알고 소비해 버릇해서…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제가 삶에서 처음으로 절망을 느꼈을 땐 주위에 조언을 구할 사람 하나 없던 터라 제 삶은 틀렸고 끔찍하게 잘못돼서 영영 돌아갈 수 없다고 느껴졌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마음먹으려 해도, 아쉽게도 당시 연속적으로 절망적인 사건이 여러 번 반복되었고, 오롯이 혼자 감당해내야 했는데 잘해내지 못했죠. 눈을 감을 때면 다음 날 깨어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저 하루를 살았답니다. 그때는 행복과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들이 곳곳에서 저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고, 제가 확실히 틀렸다는 생각만 깊어졌어요. 외톨이로 지내던 중, 우연히 울적한 감성을 다룬 작품들을 접했는데(「최종병기 그녀」,「에반게리온」, 오바타 유키의 단편집, 「스킨스」, 못의 노래들, 벡신스키의 회화 등) 이상하리만큼 개운함과 위안감이 찾아왔어요. 꼭 여기는 아니라도, 어딘가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 속에서의 삶들도 꽤 절망적이겠구나. 지금 나 같은 삶도 있는 거구나 싶으면서. 나의 오늘이 틀렸다는 생각을 고쳐주는 것만 같았어요. 이 경험 덕에 이런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네, 이야기가 통하는구나 고쳐 생각하게 되었죠. 공감에서 위안을 얻고, 내 삶도 증명받는 기분. 버려진 쓸데없는 시간이 아닌 내 나름의 존재를 위한 시간이었음을 얼핏 느낀 거였죠. 이런 유의 작품들을 더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적고 숨어 있고 가려져 있는 데다가 찾았다 싶으면 대체로 자극의 정도가 지나쳐서 다른 면에서의 불편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저는 많이 회복되었지만, 당시의 기억이 또렷하기에, 어딘가에서 절망감을 곁에 두고 있는 분들에게 그 삶은 틀리지 않았고, 힘들겠지만 그 역시 또 하나의 삶이라고 이야기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경험 덕에 우리는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요. 제가 작업물을 되도록 여러 창구에 올리는 것도, 플랫폼에 대한 흥미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경로로 발견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게 하고 싶어서예요. 기회가 된다면 다소 아픈 창작물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이도 넘어져서 고통이란 것을 배우고 그 기억으로 조심성을 마련하듯, 심리도 마찬가지로 훗날 큰 절망을 바로 마주하기보다 단계별로 안내해주면 건강히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소규모 출판만화만 해도 컬렉션을 갖추었을 정도인데 울적한 감성을 다룬 콘텐츠를 찾기 위해 보내온 시간과, 찾아내면 너무 반갑고 귀하다는 생각에 꼭 소장하려 했던 마음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어요. 저는 독립창작물을 굉장히 좋아하고 응원하는 편인지라, 새롭거나 마음에 들거나 응원하고 싶을 때면 꼭 구입하다 보니 그 양이 어느 시점 이후로는 어마어마해져버린 게죠… 직접 몇 작품 영업하자면, 우선 김도이 작가가 누군가의 소소한 습관을 담아낸 재기발랄한 시리즈 ‘어떤 습관’. 이 시리즈를 보노라면 소소하게 옆에서 이야기를 엿듣는 듯 누군가를 알아가게 됩니다. 단편 「나무에게」는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품인데, 도이 작가 특유의 간결한 생략과 간질간질한 글귀로부터 오는 따스함이 자극적이지 않고, 뭐랄까, 비건푸드 같다고 할까요! 앵, 방새미, 윤재안, 란탄, 잔디롤빵, 박새한, 안유진, 허현정 작가님들을 꼭 소개하고 싶어요. 전부 나열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 만화잡지 《얼룩》의 청사진 온라인 연재폼을 열어, 종이잡지에는 수록되지 않는 별도의 연재분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하지만 역시 다들 개인 생업을 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네요. 지류잡지를 메인으로 삼고, 매년 출간하는 횟수를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색 중입니다. 얼룩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각자 연재를 하게 될지, 기존의 웹 플랫폼을 빌려와 진행하게 될지 논의하는 중입니다. 모두들 《얼룩》을 통해 다소 실험적이거나 시대역행적이거나 하는 ‘시도’를 준비하는 모양이에요. 저도 그 기운에 영향받아 가급적이면 실험적인 신작들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 동료, 혹은 예비 작업자에게 부치는 말 누군가에게서 과거의 저를 발견하면, 외면할 수 없어져요. 스무 살에 무턱대고 공부하겠다고 서울을 올라왔을 적에 자문을 구하기 어려웠거든요. 간절한 마음과 무관하게. 고향에 있던 10대 시절 동아리나 화실에서보다 더 많은 피드백과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했던 만큼 찬물 끼얹어진 듯 막막했던 기억이죠. 혼자 공부하다가 잘못된 길에 들거나 어쩐지 본인의 작업과 멀어지는 습관이 드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경험했기에, 갈래길에 서 있는 많은 예비 창작자분들을 보면 과거의 간절했던 저를 선명히 떠올리게 됩니다. 그 시절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정말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지금 자신보다 조금이나마 앞서 걷는 사람에게 듣는다면 힘이 될까 바라면서요. 실은 모든 분들이 창작을 편하게 가까이 두었으면 해요. 진지하고 어려운 주제나 문제점들을 ‘예술가'로서 다루는 일도 필요하지만, 쉼터같이 느낄 만한 창작방식을 구비해두면 무엇보다 생활하는 사람에게, 삶에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어릴 적 누구나 부담 없이 미술 시간을 즐겼던 것처럼… 창작을 공부하는 분들에게서는 항상 좋은 영향을 받습니다. 나와 꼭 같지 않으니까,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과 그 사람이 보유한 개인적인 기억이 참 귀해요. 안타깝게도 시간이 조금씩 흐르다 보면 적지 않은 친구들이 펜을 내려놓기도 하는데, 잠시 쉬는 것이 아니라 영영 떠나는 일도 자주 보게 됩니다. 저만 해도 여러 개의 벽에 막혀 있던 적이 많아요. 그때 저는 당장 해결하는 것보다,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 격려, 그들의 진짜 경험을 듣고 싶었어요. 앞이 깜깜해 보이고 희망이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는 있고, 다들 저마다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훗날 내 창작의 자산이 되고 목소리가 되고 펜의 잉크가 된다고. 그런 이야기가 절실할 친구들이 보이면 외면할 수 없게 됩니다. ¶ 디스토피아적인 무드가 전해지는 그림들 예전에는 새벽, 요즘은 해질 무렵의 묘사를 주로 하게 됩니다. 창과 문이 있는 배경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는 장면을 많이 그립니다. 과거에 파트타임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는 왠지 걱정과 후회들이 떠올랐어요. 대중교통 안에서 둘러보면 나 외에 많은 분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여러 가지 언어를 읽었습니다. 저들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 가늠해보면서 그들을 바라보았는데, 버스 창가 너머를 향한 그들의 초점은 바깥풍경이 아니라 어떤 기억을 더듬는 듯한 인상을 주었어요. 창문과 문이라는 매체를 굉장히 좋아해요, 화면 속의 화면이라는 점, 창문을 통해 밖과 안을 경계 지으며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 점, 창 너머나 문밖을 향하면 어떤 기억을 더듬도록 자극받게 되는 점, 모두 좋아합니다. 이런 표현의 중심에는 걱정과 후회, 미련이 주로 표현되다 보니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상징성을 얻게 된 것 같아요. 일이 한창 벌어지는 사건의 현장을 묘사하기보다, 사건으로부터 어느 정도 지난 시점을 다루는 작업이 요즘에는 특히 즐겁게 느껴집니다. ¶ 길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 무작정 상경했다가 홍대 길거리에서 노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매우 젊었고 날이 따뜻해서 버틸 수 있었죠. 10대 시절 가정에서의 스트레스가 많았던 만큼 독립 후의 해방감은 거대했어요, 자유로워 보이는 홍대 거리의 사람들을 연습장에 틈나는 대로 그려 채웠어요. 가방 없이 연습장과 펜만 들고 다니면서 보이는 대로 기록했죠.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노숙의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는데요. 어떤 날은 노숙인분들께 제 작업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분들의 과거사를 듣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섭고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런 중에 도움을 주시거나 제 연습장을 보고 이러저러한 조언을 해주신 분들에게서 힘을 받기도 했습니다.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구하기 어려웠던 만큼, 길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는 소중했어요. 한번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을 아는 듯이 거짓으로 다룰 때, 진짜로 겪은 누군가는 작업물을 보는 것만으로 상처를 받는다는 충고를 들려준 분이 계셨는데, 아직까지도 그 말은 강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 자기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의 위력 십수 년간 만화일기를 그렸습니다. 당시엔 별것 아닌 듯했던 일상도, 내일의 내가 읽을 수 있는 어제가 되죠. 하루라는 시간에 희노애락애오욕이 얼마나 다채롭게 담겨 있는지, 내면의 그릇에 담겨 있던 것을 꺼낼 수 있는 감정의 냉장고가 자리한 느낌입니다. 일기를 쓰고 있자면, 정리되지 않은 봉투 속 지난 기억을 하나씩 꺼내서 손질하고 다듬고 씻어서 예쁘게 다시 냉장고에 담아두는 느낌을 받아요. 나를 기록하면서, 나를 공부하면서, 외부에 나를 설명하는 법까지도 익히게 되죠. 반대로 제가 제 스스로를 납득하고 다음을 준비하게 도와주기도 해요. 어제와 내일의 결합인 오늘의 기록은 내 현재의 좌표를 알려주니, 잘 가고 있는지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지 가늠해볼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일기를, 글과 그림에 칸이라는 장치를 더해 저의 언어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기록해요. 글만으로는, 하나의 장면으로는 부족한 것에 때로는 색을 더하고, 시각적인 설명을 더합니다. 일기에는 저의 하루하루를 증명해주는 물질로서의 힘이 있어요. 잡히지 않는 저의 시간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합니다. 이따금 무언가 막힐 때면 일기 속 과거의 저에게서 해답을 얻어요.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 창고이기도 하죠. ¶ 작가 자신을 닮은 만화 속 인물들 다소 민망하지만 많은 인물이 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을 부정하기 어렵네요. 모든 창작은 자신으로부터 흘러온다고 생각하여요. 창작이라는 행위 자체가 자기를 곱씹는 일종의 성찰 과정이니까요. 스스로를 오래 탐구하다 보면, 일방으로 흐르기보다 오히려 다방면으로 검토하게 되고, 어떻게 이 감정까지 이르렀는지의 경로를 습득하게 됩니다. 직접 완성한 요리를 맛보면서 매운 맛과 쓴맛의 출처, 재료의 본래 맛을 가늠해보고, 손질의 정도를 가늠하죠. 이런 자기 분석은 타인을 알아가는 힌트가 되기도 합니다. 스스로에게 되뇌던 말들은 타인을 마주하는 태도가 되고, 누군가에게 들려주었던 말들이 사실은 나를 향하는 메시지인 것을 발견하게도 돼요. 스스로와의 깊은 소통을 통해서 오히려 객관화를 거치게 되는 과정은 아직도 낯설고 신비롭습니다. 나만의 것인 줄 알았는데 싶던 것을 공유하고 공감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창작을 하길 참 잘했다 싶어집니다. ¶ 우야의 스파인(spine): 중심축이 되어주는 책 이 공간의 이름이기도 한 스파인에 책등이란 뜻이 있다고 하셨죠. 건축물의 형태가 왠지 하나의 책 같아 보이고, 이 안에 여러 창작자의 결과물이 어우러진 모습이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본 질문으로 돌아오자면… 저의 중심축이 되어주는 책이은 바로 보노보노 시리즈입니다. 제가 방황하다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복귀했을 때, 예전에 하던 방식으로 창작하기 쉽지 않음을 절감했을 때 큰 힘이 되어준 책입니다. 만화에는 이런 힘이 있구나, 단순하고 어렵지 않은 구조에 이만한 깊이가 담기고 짜임새가 잡히는구나… 새삼 만화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된 책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그리고 있는 「어떤 별빛」 연작입니다.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단편을 그려보자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던 것이, 점점 정들고 재밌어지면서 디테일과 이야기를 추가적으로 붙이게 됐고, 다방면으로 연구하게 됐습니다. 처음으로 페어 부스에서 선보인 연재본이었던 만큼 많은 분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작품인지라, 창작에 있어서, 또 그것을 오픈하는 데 있어서 큰 중심축으로 작동하고 있어요. ¶ 우야의 다음 우선 「어떤 별빛」 연재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설정이 많이 생략된 가벼운 중철형식으로만 소개해왔는데, 슬슬 번듯한 모습으로 졸업시켜주고 싶달까요. 300페이지 내외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랍니다! 공동작업으로는, 팀 얼룩의 만화잡지 1호 연재와 웹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터디 고리의 활동도 슬슬 발동을 걸 예정입니다. 저와 윤재안 작가를 제외하고 다들 졸업했기 때문에 조만간 들려드릴 소식이 있을 거예요. 새 작업실을 구하면서, 스파인서울 팝업 중에 했던 워크숍의 기억이 좋아서 그 연장선상의 클래스도 준비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세기말 분위기의 단편도 시작하려 하고, 창작 관련해서는 욕심이 너무 많아요.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하나씩 잘 풀어서 선보이겠습니다. 속도가 느릿해서 죄송스럽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