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Yoon Je AnInterviewee 윤재안. 1996년 출생. 아주 어릴 적부터 무언가 따라 그리는것을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서 만화창작을,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대학 재학 중에 몇몇 동료 작가들과 함께‘장르만화스터디 SIS’ 페이지를 꾸려 정기적으로연재하면서, 현재까지 총 열네 편의 단편만화를공개했다. 휴학 후 RM의 「Forever Rain」 뮤직비디오에애니메이터로 참여했고, JTBC 「비긴어게인3」오프닝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2019년 열린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서 「poppies」의 단서를처음 소개했다. 최근 아디다스 홍대 브랜드센터에 전시아트워크로 참여하고, 스트릿브랜드 선데이오프클럽의의상 그래픽을 맡는 등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도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je_ahn96 →Intervierwer 김미래 @miraeseoul →¶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지만,한 장의 그림에서도 이야기가 그려질 정도로 공들여캐릭터를 가공한다는 인상이다. 이는 만화라는매체의 영향일까? 반에 꼭 한두 명씩 있잖아요, 교실 뒤쪽에서 그림을 그리는친구. 저도 그런 학생 중 하나였습니다. (가족들 말로는)아주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따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해요. 어쩌면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이유가단순히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저는 다른 작가분들에 비해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만화를보면서 자라오지는 않았어요. 학창 시절 친구들은 다 봤던「원피스」, 「나루토」, 「블리치」(일명 ‘원나블’) 세 작품다 안 봤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는 항상 만들고싶었습니다. 그러다 찾은 방법이 만화이지 않았나 해요.다만 만화보다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물 보는것을 좋아했는데, 그래서인지 제 만화에서 영화 연출이느껴진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습니다.만화라는 매체는 꽤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생각합니다. 글로 된 작품은 독자의 능동적인 참여를요구하지만, 그림은 반대로 창작자의 세상을 직관적으로보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만화는 이 두 가지 특징을모두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어느 정도의 이미지는 독자에게 제공할 수 있지만, 제가의도한 템포를 독자도 느끼게 하려면 연출이 적절해야하는데, 콘티를 반복해서 보다 보면 제가 그 템포를 잃는경우가 있습니다. ¶ 장르만화스터디라는 창작집단에서 꾸준한 신작발표를 해오고 있다. poppies만큼이나 생산성 높은이 모임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페이스북으로 전부터 페이지를 만들어 일러스트를업로드하고 있었지만, 만화에 대한 갈증은 줄곧 있던 것같아요. 고등학생 때 그린 만화들은 봐주신 분들이 많지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평가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그래서 고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잔디롤빵 작가님과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다가, 평소 장르물을 좋아했기에여러 장르에 대한 연구를 해보자는 의기투합으로탄생시킨 팀이 장르만화스터디 SIS입니다. 현재는저와 잔디롤빵, 서글, 그리고 쏘키, 이렇게 네 작가님이참여하고 있습니다. 네 사람 모두 활발하게 개인 활동을하기에, 마감 날짜를 대략적으로 정하는 것 외에는특별한 규칙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작품 업로드가끝나면, 몇 주 내에 멤버들이 모여서 회의 후 다음 장르를정하고, 그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식입니다.즉, 작품 업로드가 늦어질수록 모임을 가지는 주기가길어지게 되지요. ¶ 작업자로서 최적의 공간과 시간을 이야기한다면. 우선 집은 절대 아닙니다. 요즘은 ‘일단 밖으로나가자!’라는 마인드를 습관화하려고 노력해요. 자주가는 동네 카페가 있어요. 자전거로 2분 정도 걸리는거리인데, 너무 크지도 않고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않은 공간이라 집중하기 제격입니다. 그 시간에 카페를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녁 식사 후 7~11시 사이가작업 효율이 가장 높은 시간대인데요. 그 뒤부터는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한편 일이 아주 안 될 때는 빗소리를 듣습니다.최고의 백색소음이 아닐까 싶은데, 안정적이면서도적당한 소음이 몰입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줍니다.하지만 집중도 안 되는데 피곤하기까지 하다면...그 빗소리는 숙면 사운드로 탈바꿈하기에, 그럴 때는극약처방으로 서태지 4집을 듣는답니다. ¶ 윤재안이라는 필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예전에는 ‘윤빛머리’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조금씩그림을 올리곤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잠깐 불린별명이거든요. 이름이 ‘윤’으로 끝난다는 이유에서생긴 것이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페이스북에 페이지를 만들면서, 새로운 이름을 붙여보고싶었어요. 이런저런 이름을 떠올리다가, ‘아무 의미 없어보이는 이름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본명을거꾸로 뒤집었습니다. 실제로 만나면 헷갈려하는 분들이많아서, 지금 와서는 그냥 제 본명을 쓸 걸 그랬나 싶지만,바꾸기엔 조금 늦은 것 같습니다. 재안과 재윤을 오가는삶을 살고 있어요. ¶ 꽤 많은 수의 만화를 만들었지만, 책의 형태로구할 수 있는 작품은 드물다. 출판을 염두에 두거나두지 않는 작품에 기준이 있는지? SIS라는 팀을 만든 큰 이유 하나가 대중 앞에 제 만화를보이고 싶다는 것이었기에, 출판을 염두에 두고시작하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페이지만화의 형식을 띠는 이유는, 웹과 출판을 딱히 구분짓지 않고 ‘내가 익숙하게 해왔던 것을 하자.’라는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다만 업로드한 작품들이많아지면서, 실제로 만져지는 결과물로 남기고 싶은작품들이 생기더라고요. 제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다시보게 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당시 어떤 생각을 하며작업을 했었나 더듬어보며 스스로도 몰랐던 의도나질문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도 있고, 또 어떤 작품은그냥 재밌어서 계속해서 눈이 가기도 하고요. 이런 작품모두를 언젠가 출판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하고 있습니다. ¶ 첫 클라이언트잡은 무엇이었나. 전부터 간간히 여러 외주 작업을 했지만, 제 아트워크를내세워서 하게 된 첫 외주 작업은 2019년 말에 오픈을앞둔 아디다스 홍대 브랜드센터를 위한 전시용일러스트였습니다. 서울의 여러 배경사진 위에아디다스 의상을 입고 운동하는 캐릭터를 그려 넣고,큰 액자에 이미지들을 퍼즐처럼 배치하는 작업이었어요.평소에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리기 좋아했기에재밌게 작업했습니다. 제 오리지널 작품으로 받은 첫외주잖아요. 그것 자체만으로도 큰 보람이 됐던 것같아요. 타이트한 일정, 평소에 다루지 않는 역동적인자세나 근육을 묘사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지만,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았습니다. ¶ poppies의 최초 아이디어 이 시리즈의 첫 일러스트는보컬 포지션에 있는 원영의클로즈업된 얼굴이었습니다. 당시 Lamp라는 일본밴드의 음악을 무한반복 재생할 만큼 좋아하고 있었는데,그들의 앨범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던 앨범의 커버가겨울 바다 사진이었어요.(이 책 속에도 작업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로 등장합니다.)•6page 앨범의 전반적인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앨범 커버는 무척 중요한 역할을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앨범은 들을 때마다 한적하고추운 날씨를 환기합니다. 약간의 저음질과 LP 특유의스크래치 소리가 들리는 듯 빈티지한 무드가 전해지기도하고요. 이런 분위기들이 혼합된, 필름카메라로 찍은듯한 겨울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참 좋더라고요.그런 이미지의 앨범 커버가 없을까 하다가, ‘그냥 내가그리자!’ 하는 생각에 그린 그림이 첫 번째 작품이되었네요. 그때는 이렇게 나름 큰 프로젝트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 「poppies」라는 밴드만화, 카테고리가 명확하고좁은 것 같지만, 한편 어마어마한 시리즈가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 밴드음악과 만화,빈티지패션이라는 키워드의 매력을 영업한다면.대중이 밴드음악에 매료되는 큰 이유 하나는 그것이청각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라고생각해요. 세션음악은 보컬 혹은 메인 악기에 집중할수 있게 연출하지만, 밴드는 멤버들 각각의 캐릭터가부각되는데, 개성이 저마다인 인물들의 합주를 볼 때느껴지는 쾌감이 있거든요. 물론 밴드만화에는 정작음악이 없다는 게 큰 모순이죠. 온전히 독자의 상상에맡겨야 하는데, 그 상상을 돕는 데 각 캐릭터의 역할이무척 중요해요. 캐릭터가 잘 보여야 그 인물들이 뭉쳤을때의 사운드를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밴드만화도결국 사람 이야기이기도 하고요.제가 빈티지패션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패션스타일의 거의 모든 스펙트럼을 포괄한다는 점이에요.잘만 찾으면 각자가 추구하는 취향을 모두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개성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죠. 비슷한스타일이라도 동일한 제품인 경우가 드무니까요.밴드음악과도 이 부분에서 분명히 맞닿아 있습니다. ¶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면서 생긴 인연이나 우연적인사건이 있다면? 저는 주변에서 볼 법한, 흔히 데일리룩이라고 부르는차림의 인물들을 상상하며 그리기를 좋아하는데,그런 방식을 좋게 봐주셨는지 선데이오프클럽이라는스트릿브랜드에서 콜라보 의뢰가 왔어요. 첫 작업은19/20 겨울 시즌의 의상 컬렉션을 일러스트로 그리는것이었습니다. 옷을 좋아하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게작업한 기억이 나요. 이후에는 의상 그래픽디자인에직접 참여하는 등 몇 번의 작업을 함께하게 되었지요.사장님과 만나서 작업도 여러 차례 했는데, 그동안궁금했지만 저에겐 미지의 영역이었던 패션 시장에 대한이야기도 들어보고, 같은 창작의 영역에서 비슷한 고민을하고 있다는 사실도 접하게 돼서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 혼자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관리, 즉 나라는고용인과 나라는 피고용인 사이를 조정하는방식은 어떤가. 최근 가장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원래는 작업할 때에도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뤄선 큰일이 난다 싶으면그때서야 시작하는 게 습관이었어요. 그래서 컨디션도뒤죽박죽이고 작업 막바지에 이르면 며칠씩 쪽잠만자면서 작업하곤 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이런패턴으로 일해도 괜찮았지만, 최근에는 일이 늘어나고,해마다 체력도 떨어지는 게 느껴져서 힘들더군요.그래서 요즘은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손을 움직이려고합니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일단 밖으로 나가기’를실천해요. 나가서 작업하게 되면, 그 하루 동안 좋은결과물이 없더라도 자책감은 덜어지지 않나 싶습니다.작업 막바지의 밤샘은 여전하지만, 결과적으로 작품의퀄리티는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또 최근 들어서 꼭 지키려고 하는 것이 생겼습니다.‘순서대로 작업하기’. 작업을 하다 보면 싫증이 나는순간이 꼭 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기 싫은 컷이나 장면을마주하게 되면 뒤로 미루고 다른 장면에 먼저 손을 대게됩니다. 문제집 풀 때 쉬운 문제부터 푸는 것처럼요.하지만 그러다 보면 막바지, 가장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 싫은 부분들만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립니다.정해놓았던 스케줄이 엉망이 되는 건 물론이에요. 그래서그저 차분하게 하나하나 밟고 넘어간다는 생각으로순서대로 하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poppies」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무엇이고, 그 페이지를 그리면서 어떤 기분이들었는지 궁금하다. 바로 생각나는 컷 하나가 있습니다. 6쪽 첫번째컷인데요, 원영(보컬)이 찬영(드럼)과의 내기 게임에서수세에 몰리던 중 울린 벨소리를 핑계 삼아 도망치는장면입니다. 원영이가 걸어 나가지 않고 파쿠르하듯소파 뒤로 뛰어 넘어가는데, 이 컷에서 원영의 동세를그릴 때 꽤 재밌었어요. 세로로 긴 컷 모양도 마음에듭니다. 원영이만의 어딘가 튈지 모르는 막무가내 성격을드러내주는 컷이기도 하고요. 같은 맥락에서 38쪽의마지막 컷도 재밌게 그렸습니다. 머릿속에선 그리기어려울 것 같던 동세가 막상 생각한 대로 나와서 만족감이 높았습니다. ¶ poppies 친구들은 회차를 거듭하면서,나이를 먹을까?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잘은 모르겠지만어느 정도는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여러 에피소드형 애니메이션들처럼요. 현재로서는우리에게 익숙한 지금의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거든요.좋은 음악가나 밴드를 발견하게 되면 보통 처음에는특정한 하나의 앨범을 반복해서 듣게 되잖아요? 그러다점차 전후 앨범을 찾아 듣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좋을때도 있지만 뭔가 아쉽다는 기분이 들어요. 처음의충격이 희석돼서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발견한 앨범이나왔을 그 당시의 아티스트와 다른 시기의 아티스트는어떤 식으로든 달라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성숙해가면서 생기는다양한 변화들이 음악에 그때그때 반영되니까요.저는 poppies라는 밴드에 어느 정도 인지도가생겼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신예밴드인만큼 아직 안정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점이 좋아요. 멤버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불안과 긴장을 가져가고 싶기 때문에, 앞으로도 신예였으면 해요. ¶ 음악을 고르는 권한이 주어지는 카페에서 일하는로망이 있다고 했는데, 이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들려주고 싶은 배경음악이 있다면. 위에 잠시 소개해드렸던 밴드 Lamp의 「恋人へ(For Lovers)」를 추천합니다. 이번 작품에 비해선 조금잔잔하게 들리실 수 있지만, 처음에 poppies를 시작하게된 이유와 깊은 연관이 있으니까요.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poppies는 좀 더 캐주얼해졌는데, 이전 일러스트들을보면서 들으셔도 좋을 것 같네요. 올겨울 눈이 많이내리는 날이 있다면, 산책하면서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또 하나 추천해드리고 싶은 앨범이 있는데, 바로JUDY AND MARY의 「Fresh」라는 히트곡컴필레이션이에요. poppies 멤버들의 전반적인분위기를 잡는 데 가장 영향을 많이 준 밴드죠. JUDYAND MARY의 통통 튀는 와중에 느껴지는 세기말적인분위기, 귀여우면서도 파워풀한 보컬, 옷 스타일 등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Superorganism, 세이수미 등 많은 여성보컬 밴드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떠오른 이미지들이 종합된결과물이 현재의 poppies인 것 같습니다. 시간 나시면 다 들어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