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SPINE은 한 사람의 작업과 삶에 중심에 놓인 책들을 공유하는 코너입니다.Omscic Comics' SPINE(FEB, 2021)Writer 정원교(옴씩코믹스 편집장) @omscic_comics옴씩코믹스는 만화의 시공간 감각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롭고 도전적인 만화를 만드는 출판사입니다.¶ BAD BALL by Samplerman(2017)¶ NIGHT DOOR by Patrick Kyle(2017)¶ DISTANCE MOVER by Patrick Kyle¶ PLAZA by Yuichi Yokoyama(2020)¶ BABY BOOM by Yuich Yokoyama¶ ESCAPE TO THE UNNFINISHED by Dash Shaw(2017)¶ 2001 By Blaise Larmee(2017)¶ YPRES by Elliot Dadat & Antoine Orand(2017)¶ BICYCLE DAY by Brian Blomerth(2019)¶ BAD BALL by Samplerman(2017) “자, 말해봐. 너는 어떤 부류의 지휘자야?” 여기, 또 다른 공의 모험이 펼쳐집니다. 샘플러맨은 1950년대 미국 만화들을 콜라주함으로써 기묘한 세계를 만들고 독자들을 시험에 빠뜨립니다. ‘만화’라는 매체를 집요하게 ‘독해’해내는 우리의 능력은 이 기묘한 이미지의 연속을 재생하기 위해 풀가동되고, 이는 예상치 못한 자극을 안겨줍니다. ¶ NIGHT DOOR by Patrick Kyle(2017) 중첩 기법은 등장하지 않는 대신, 선의 다양한 운용을 기반으로, 작가 특유의 신비로운 세계가 조성된 작품입니다. 만화의 기호적 표현은 말풍선, 소리, 냄새, 움직임들을 캐릭터처럼 ‘존재’하게끔 합니다. 생명을 부여받은 ‘그것’들은 만화 혹은 만화독해를 한층 역동적으로 만들죠. 패트릭 카일은 캐나다 인디 만화 신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만화표현의 영역을 확장하는 만화가로, 선을 겹침으로써 내용 혹은 형식적 재미는 추구하는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만화 속 선의 모험에 동참해보는 건 즐거운 경험이 될 겁니다. 이 사람이 흥미롭다면 MICHEAL DEFORGE도 읽어보기를. ¶ DISTANCE MOVER by Patrick Kyle 중첩이란 테크닉의 아주 능수능란, 능글능글한 활용을 만날 수 있는 책. 선들간의 관계를 믹싱하고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패트릭 카일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다소 절제된 인상입니다. 두 가지 색상으로 구분한 세계를 독자는 유려하게 조합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굳이 칸이 없어도 작가가 의도한 순서대로 그림과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친절한 독해를 돕던 두 색상의 리듬이 절묘하게 엉키는 장면에서, 만화적 야심가에게 뒤통수를 탁 맞는 기분이 들어요. 개성적인 선의 사용, 두 가지 색상 표현이 표현과 내용의 재미를 모두 충족하는 근사한 ‘순간’을 만듭니다. 이 순간의 쾌감을 맛보길 권합니다. ¶ PLAZA by Yuichi Yokoyama(2020) 요코야마 유이치는 퍼레이드 속에서 펼쳐지는 동시다발적인 사건을, ‘동시다발적’으로 표현한 책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책에서 중첩이라는 기술은 다소 평이하게 느껴집니다. 역동적인 움직임의 잔상과 효과음을 겹치는 것은 만화의 오랜 관행이니까요. 하지만 이 안정적인 관습조차 극단적으로 밀어붙여본다면, ‘새로움’이 탄생하는 거죠! 선의 운동을 가장 극대화한 만화를 상상해봅시다. 눈을 뜨면, 그 대답이 놓여 있어요. 요코야마 유이치의 만화책이라는 형태로 말이죠. 사실 그의 만화는 정직한 시공간 경험을 제공합니다. 컷과 페이지의 순서에 따라 어떤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사건이란 게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거든요. 단순한 캐릭터들이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든지 공을 던지고 논다든지 하는 일상의 사건. 하지만 이 단순한 사건들은 그저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 여러 감각을 일깨우며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좁았던 시야가 탁 트이기도 하고, 쪼그렸던 몸을 스트레치하는 기분도 ‘실제’ 느껴집니다. 만화를 읽으면 관절이 유연해진다니까요. ¶ BABY BOOM by Yuich Yokoyama 아버지와 아들의 일상을 다룬 사랑스러운 만화입니다. 이걸 “나는 시간을 그리려고 한다”라는 작가의 코멘트를 염두에 두고 보면, 또 다른 재미의 포인트가 찾아집니다. 종이에 인쇄된 명백한 잉크의 흔적이지만, 마치 작가가 감각했던 운동감 혹은 시간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 말이죠. ¶ ESCAPE TO THE UNNFINISHED by Dash Shaw(2017) 대시 쇼의 만화를 빼놓고 만화의 중첩을 얘기할 순 없을 겁니다. 미국 인디 만화 신의 ‘현재’를 이야기할 때도 뺴놓을 수 없는 만화가고요. ‘중첩’을 핵심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는 만화라는 말은, 만화의 주제 자체가 상당히 ‘중첩적’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관한 듯 뒤엉킨 우리의 실제 삶들처럼 말이죠.선택된 인과관계의 나열을 선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주로 읽고 감상해온 만화의 이야기세계입니다. 그는 이 이야기들의 관계 자체를 다루고 싶어서인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자주 겹칩니다. 그는 만화를 만들 때도, 이야기 하나에 시공간의 레이어가 분리된 것처럼 독립적으로 제작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레이어 앞뒤로 다른 레이어를 잇는 방식으로, 즉흥적인 효과를 유도하죠. 그래서 그의 만화에서 ‘색상’은 특별한 역할을 자저합니다. 다른 시공간 레이어의 등장을 알려주는 식이죠.그럼에도 그의 만화는 몹시 전형적인 만화로 보입니다. 혁신적인 기법과 구조를 좇지만, 모든 결과물이 정통적인 ‘만화’로 귀결되다니... 이 알쏭달쏭한 문장은 작품을 손에 들면 바로 납득이 갈 겁니다. ¶ 2001 By Blaise Larmee(2017) 난해하고 아름다운 블레즈 라미의 2001을 소개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행위와 만화를 소재로 이 책을 지었습니다. 난해하기까지 한 자아도취적 감성에는 공감하기 어려웠어요. 본인의 예술과 시간에 대한 혼돈을 그저 만화적으로 표현해본 것뿐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거든요.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앞선 요소 덕분에 이 책은 아름답기도 합니다. 일반적이며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 그 귀속물일 수밖에 없는 만화책이 반항하는 모습이라니! ¶ YPRES by Elliot Dadat & Antoine Orand(2017) 앙투안 오랑의 만화는 컷을 통해서 시간을 느끼는 우리의 감각과 춤을 춥니다. 배경을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컷들은 전통적인 독서습관으로 보면 혼란스러울 뿐이지만, 제한된 정보를 애써 조립하다 보면 숨은 틈새로 드러나는 강렬한 경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삶 속에서 사실은 매순간 발생하고 있는 ‘스파크’를 담아낸 듯해요. 머릿속에서 조립된 사건의 전체적인 상은 독자마다 다를 겁니다. 이 또한 이 만화의 매력이죠! ¶ BICYCLE DAY by Brian Blomerth(2019) 알버트 호프만은 우연한 계기로 LSD를 발견합니다. 그 과정에서 겪은 환각경험을 브라이언 블로머스는 아름다운 별색을 중첩하면서 표현해냈죠. 평범한 일상은 CMYK의 조합으로, 비일상은 별색으로, 이 두 세계는 조응하듯 불화하듯 어떻든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